제목

(제7회, 장려상)하도 만져 반질반질한 내연금통장은 이젠 자꾸 무거워지네

작성부서

홍보실

등록일

2007/04/13

조회수

2147

내용

어제 나는 날씨도 화창하여 용산 국립박물관을 구경하면서 일행들과 몇 잔의 커피를 연거푸 마신 탓인지 영 잠이 오질 않는다. 하여 잠자리에서 일어나 연금통장을 보았다.
2004年 7月 30日까지 모두 열일곱 번의 연금이 통장에 찍혀있었다. 그래서 마치 박세리 골퍼가 큰 유리 상패에다 기쁨의 뽀뽀를 해 주듯이 나도 연금통장을 입에다 갖다 대고 ‘쪽’ 소리를 내본다.
돌이켜보건대 지금부터 거의 六年前 한 여름으로 기억한다. 그때는 지금보다 좀 팔팔거릴때라서 일도 열심히 하여 연금 붓는 액수가 별로 많지 않아서 그냥 처음부터 다달이 은행에 가서 잘 냈다. 그런데 약 연금 액수가 일백만원을 넘게 붓게 될 때쯤엔 나에겐 좀 벅찼다. 그것은 납부금액이 소득월액의 1%씩 증액이 되었기 때문이다. 일 년마다 한 번씩 말이다. 나는 그만 중도에 포기하고 말았다.
그 당시 나의 생각으론 이거 열심히 연금보험을 열심히 냈다고 하더라도 나중에 콩알만큼 탄다고 하는데 뭐. 그냥 시큰둥하게 별거 아닌 것 같은 마음이었다. 무릎관절이 몹시 아파서 일의 의욕을 잃어버렸다.
나는 본래 Y. M. C. A에서 오십대 초반에 산모도우미 교육을 받고 계속 쉬지 않고 일을 하다 보니 건강에 적신호가 왔다. 그뿐 아니라 산후조리원은 우후죽순같이 여기저기 많이 생겨 내가 일해야 할 자리가 별로 없었다.
딸은 結婚하여 2년에 한 번씩 아이를 쑥쑥 잘도 낳는다. 그럴 때마다 “엄마아! 엄마! 나는 어떻게 해. 꼬맹이는 젖이 나오질 않고 우유 젖병은 빨질 않아 속이 상해 못 견디겠다고” 딸의 전화기 속 음성은 차라리 눈물이 뚝뚝 떨어지는 절규였다. 하는 수 없이 부천에서 일산으로 아픈 다리 쩔뚝거리며 종로 3가에서 3호선을 갈아타고 갈 때는 “으흠. 외손녀 보느니 차라리 파밭을 매라고 했다는데.” 이렇게 중얼거리며 층층계단을 힘들게 올라간다.
그러는 사이에 연금고지서 쪽지가 수북이 쌓인다. 하루는 동사무소로 찾아갔다. 직원에게 말했다. “나는 어찌했으면 좋겠소?” 라고 물었다. 중도에 포기하는 것은 너무 아까우니 밀린 보험료를 한꺼번에 마련하여 계속 유지해 보라는 권유였다. 나는 그 직원이 하라는 대로 몇 십만 원을 들고 보험공단에 가서 밀린 보험료를 납부하고 자동이체도 했다. 그날은 그렇게 홀가분하고 잠도 잘 왔다. 그 때 동사무소 직원 말이 귓전을 두드린다. “배우자 없는 분에게는 그래도 지금은 다달이 힘들겠지만 나중엔 소중히 쓰일 것입니다.” “오래 건강하게 살면 득이 됩니다.”
참 그렇다! 지금 나의 국민연금 통장엔 매달 십만 천오백오십 원이 찍혀진다. 이 돈으로 APT관리비, 전화요금, 가스비, 전기료까지 충당한다. 어느 달엔 좀 모자랄 때도 있지만 어떤 때는 아주 쬐끔 남을 때도 있다. 그러니, 그러니 내 통장에 ‘쪼옥’ 뽀뽀 안 해줄 수 있겠냐 말이다.
올 여름 셋째 외손녀 돌반지도 연금통장에서 찾아서 샀다. 그러니까 외할미 노릇을 톡톡히 한 셈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나는 더 뺄 것도 더 보탤 것도, 그저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싶다.
내 딸은 結婚한 지 꼭 만 8년이 됐다. 그동안 딸만 셋을 낳았다. 친할머니는 나보다 7년이나 젊지만 그 아이들을 봐주질 않았다. 어쨌든 셋을 나의 직업인 것처럼 정성 모아 돌봐주었다. 사위한테 그동안 봉투한번 받아본 적 없었다. 늘 가끔 관광 다녀오면 오히려 싱싱한 생선, 마른나물 등을 머리에 이고 들고 찾아가서 그들에게 갖다 주곤 했다.
내 아들 녀석 올해 37살이다. 분당에다 자그마한 APT 한 채 장만해 주었더니 몇 개월 만에 당구장 한답시고 잡혀먹고 나중엔 집도 없애버리고 9년째 소식이 없다. 전화 한 통 해주어도 내가 덜 화가 나겠다. 그래서 生死를 모른다.
두 달 전, 하도 답답하여 부천 경찰서로 찾아가 주민등록번호를 보여주고 이 녀석 찾아달라고 했더니 보름 만에 연락이 오기를 그 주소에 없다고 한다. 어디서 아이 하나 낳고 잘 사는지 모르겠다.
약 보름 전에 學校 운동장에 나가서 뛰었다. 달빛이 하도 밝아 뛰면서 하늘을 쳐다보았다. 가슴 속에서 굴뚝연기같은 화기가 솟아올라 “야! 이 호랑말코들아 다 무엇하냐”라고 크게 소리쳤다. 내 큰 소리는 十里는 커녕 옆 사람도 못 알아듣는 듯 했다. 그래도 나는 애미라고 행여 찾아올 것 같은 마음에서 이사도 못하고 있다. 그 녀석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일곱 살에 호주가 된 내 아들을 그저 9년째 그리워한다.
10月 말, 가을이 저물어갈 무렵, 나는 Boy Friend 할아버지하고 의정부시에 있는 望月寺로 등산을 갔다. 단풍잎은 붉게 물들어 참으로 아름다웠다. 계곡에서 내려오는 물줄기는 졸졸 거리며 바위틈으로 흘러내린다. 등산객들은 저마다 울긋불긋한 등산옷들을 입고 잘도 올라간다. 나도 바위틈에서 털실줄기 같은 가느다란 물을 바가지로 받아마셨다. ‘와 시원타!’
“저기요. 나 할 이야기가 있어요.” “예, 뭔데 해보시오.” 할아버지는 굵직한 바리톤 음성으로 나의 다음 이야기를 재촉한다. “저 물 줄기만큼 나 국민연금 타잖아요. 그래도 많이 보탬이 되거든요.” 라고 말했다. “어허, 그것 참 아주 훌륭하군.” 것 참 훌륭하다는 말을 나는 다시 되새김질해 봤다. 좋다는 뜻도 있겠지만 안심이 된다는 말도 포함된 듯 했다.
할아버지 曰 내 아들들도 그것 매달 빠뜨리지 않고 잘 붓고 있는지 챙겨봐야겠다고 한다. 한 때는 미심적어 했다고 한다. 그렇지 않다고 나는 대답했다. 그 날 아주 기분 좋은 등산을 하고 집에 왔다. 그러니까 내 Boy Friend는 털실줄기만큼 받는 나의 국민연금을 눈독 들이는 것은 아니겠지만 “대포 한 잔 사슈 그렇다면.” 하는 말이 더 걸작스러웠다.
예, 그렇습니다. 나에게는 정말로 국민연금은 효자입니다. 몇 년이 지나도록 이 늙어가는 애미한테 소식 전하지 않는 내 아들보다 효자가 아니겠어요. 나는 아주 요긴하게 매 달 어느 보물보다 소중하게 여기면서 아껴가며 씁니다.
나라에서는 이 제도를 아주 잘 창안했다고 생각합니다. 나름대로 각자가 때론 아플 때 약도 사먹을 수 있고, 손주들 사탕도 사줄 수 도 있고, 분위기 있는 카페에 가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향기로운 커피도 한 잔 할 수도 있으니 그 얼마나 행복한 일입니까?
나는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고 싶다. 그것은 국민연금이 있기 때문이다.
공단에 감사드립니다. 반질반질한 내 통장 또 한 번 만져볼까나!
2005年 12月 1日 새벽
이영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