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제6회, 장려상)사랑의 연금

작성부서

홍보실

등록일

2007/04/13

조회수

2591

내용

제6회 장려상
사랑의 연금

박춘자/서울시 광진구 자양3동

여보 고마워요.” 은행문을 나서면서 예금통장을 가슴에 꼬옥 안아보며 언제나처럼 나는 인사한다. 그리고 덧붙여서 당신은 아들보다 낫고 딸보다도 낫고 좋은 분이군요. 어쩌면 이렇게 어김없이 매달 송금을 해주시다니 살았을 때도 가신 후에도 당신은 내게 가장 소중한 분입니다. 허튼 곳에 쓰지 않고 알뜰하게 잘 쓸께요. 이 나이에 잠시나마 느껴보는 이같은 조용한 행복감이 내 마음속에 자리잡은 지 오래 되었다.

이 행복감에 대해 나는 몇 번이고 생각해 보곤 한다. 이것이 돈이기 때문일까. 그리고 가만히 있어도 한달 지나면 저절로 들어오는 돈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것일까. 그것도 그렇겠지 돈이 얼마나 좋은 건데…. 그렇지만 단순히 그것만이 아닌 것을 나는 느낀다. 액수가 만족스러운 것도 아니고 자꾸 많아지는 것도 아니고, 웬만하면 이자 받으나마나 하다고 시큰둥할 수도 있을텐데…. 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늘 고맙고 감사하고 새로우며 기쁘기만 하다. 그래서 나는 손을 꼽아 기다리며 재미있어 한다. 이것은 차원이 틀리는 돈이다. 내게는 연금(年金)아니라 연금(戀金)이 되어가고 있다. 그때마다 그분과 함께 연금으로 아름다운 노후를 보낼 수 있었다면 얼마나 더 좋았을까 생각해 본다. 적은 봉급을 쪼개서 연금부금을 넣고 또 쪼개서 노후생활을 위하여 저축하며 우리는 그때 함께 준비하며 살아왔다. 빠듯한 생활에 쫓겨 제대로 여행 한번 갈 수 없었지만 그는 늘 내게 들려주었다. “여보 애들 다 짝지어 준 후에 우리 함께 손잡고 실컷 다닙시다. 봄이면 꽃길 걷고 가을이면 들길 걷고 살아온 얘기 나누며 군밤도 까먹고 연금 타서 해외구경도 갑시다.”라고 약속하며 부푼 마음으로 청기와 집을 짓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언제 다시 만나자는 약속도 없이 일방적으로 우리의 모든 인연을 모질게 끊어 버리고 먼 길을 훨훨 가버렸다. 그 많은 짐을 다 팽개치고 그가 가버렸을 때 그 무책임함을 원망하며 나는 허탈감과 슬픔에서 헤어날 수가 없었다.


힘내세요, 사모님!
배우자를 잃은 그 충격과 어떻게 살까하는 염려로 눈앞이 캄캄하여 자녀들도 돌아보지 못하는 절망 한 가운데 있는 내 앞에 ‘연금’이 나타났다. 그리고 말해주었다. “힘내세요, 사모님! 내가 있잖아요. 내가 올 줄을 잊었는가 봐요. 당신이 세상을 떠나는 날까지 나는 늘 당신과 함께 할 거예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 약속은 한번도 변함없이 계속되어 가고 있다. 이 얼마나 진실된 보살핌인가. 그래서 나는 ‘당신이 보내주는 사랑의 연금’이라 이름 지었다.

이 연금은 물질적 가치뿐만 아니라 내게는 늘 힘을 주는 능력으로 작용한다. 내가 아이들 몰래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도 그것은 눈치 볼 것 없이 나로 하여금 그것을 하도록 해줄 뿐 아니라 선행이나 구제에도 요긴하게 사용되며, 통장 속에 넣어 두어도 든든하고 지갑 속에 넣고 다녀도 든든하고 뿌듯하고 기분 이 좋다. 혼자 걸어도 외롭지 않고 뛰어도 달려도 넉넉한 가슴엔 두려움 없고 불평 없어 늘 노래 부르고 싶은 마음이 된다. 남들처럼 예쁜 옷 못 입어도 난 언제나 못 입는 게 아니고 안 입는 것이며, 유행 따라 꾸미지 않아도 최고의 자부심으로 살아가며, 읽고 싶은 책 찾아 늘 서점에도 가고, 갖고 싶은 악세서리를 사려고 남대문 시장에도 들르며 연금이 주는 범위 안에서의 즐거움은 어떤 것이라도 부족함이 없다. 무엇보다도 큰 보람을 나누어 주고 큰 평화를 대신 받아오는 봉사활동을 꾸준히 할 수 있도록 하는 힘도 다 사랑의 연금 덕분이다.

연금은 분명 돈이 아니다. 그 돈 액수로는 할 수 있는 것이 한정되어 있다. 그러나 그 돈을 쓰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은 너무 많이 있다. 그것이 어떤 것이라도 할 수 있도록 격려와 힘이 되며 기쁨이 되며 능력이 된다. 통장의 비밀을 가진 자는 아침 일찍 일어나도 피곤이 없고 아침운동을 해도 열심히 한다. 노후생활이 더욱 즐겁고, 좋은 계획들이 세워지고 나보다 남을 더 낫게 여기며 친절한 마음씨로 변화를 준다.
이 연금은 앞으로도 나의 가는 길에 늘 나와 동행해 진실된 안내자로 필요한 도우미로 그 책임을 수행할 것이다. 아직 남편이 벌어다 주는 생활비를 가지고 생활하는 친구들이 부럽기도 하지만 그들은 연금 남편이 갖다 주는 생활비가 더 짭짤해 보인다고 말한다.


아빠없이도 늘 씩씩하네요
자식들도 울 엄마는 아빠 없이도 늘 씩씩해서 좋다고 하며 나의 긍정적 삶에 늘 박수를 보내준다. 연금이 있어 나는 쫓기지 않고 허공을 바라보지 않으며 가장 실속 있는 최고의 취미생활도 즐긴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의 골프장이 아니라 한강 고수부지 잔디밭이 어떠한 취미도 발휘할 수 있는 최상의 초원이며 한 마당이다. 그곳에서 자신을 위하여 건강을 쌓아가는 사람 중에 나도 거기 있다. 그리고 나는 산을 사랑한다. 배낭하나 매면 대중교통으로 갈수 있는 산은 얼마든지 있고 북한산, 도봉산은 오를수록 진귀하고 아름답다.

이렇듯 강변이나 산이나 이웃에 위치한 대학 캠퍼스 등을 이용하여 건강과 취미의 생활을 즐기다 보면 연금은 또다시 큰 몫의 돈으로 쌓여진다. 그러다 또 다른 취미를 하고 싶어지면 이제는 시장을 찾는다.

내가 잘 가는 특별한 시장은 두 곳이 있는데, 꽃 시장과 뜨개실 파는 시장이다. 아직 먼동이 트기 전에 언제나 향기롭게 시작되는 생화시장. 그곳은 눈과 코를 즐겁게 할뿐 아니라 마음까지 계절 꽃과 열매와 가지들까지 진열된 그곳에서 꽃과의 대화를 시작해 보면 시인도 되고 화가도 된다. 살아있음을 감사하게 되고 소녀가 돼 보는 그 속에서 보고싶은 사람 병든 사람들을 위하여 국화 한 다발을 묶고 장미 한 송이를 포장하는 행복한 손길은 웬만한 사람들은 경험 못한다.
그러나 나는 이때 지갑을 열고 멋지게 돈을 쓴다. 연금은 이토록 꼭 쓸 곳에 쓰이면 복이 되고 기쁨이 되고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 준다. 그리고 낮아지게 한다.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어떤 때는 연금을 손에 쥘 때 미안하고 죄송한 맘이 들 때도 있다.과연 이것을 이렇게 당당하게 받을 자격이 내게 있을까? 아무 수고도 없이 말이다. 그래서 더더욱 늘 조그만 것이라도 늘 이웃과 나누며 소외된 자와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살아가려고 노력한다. 욕심을 버리고 작은 것에 감사하며 물질에 참 자유인이 되기를 원하고 있다. 내 주위를 살펴보면 연세가 많아 드셨는데도 불구하고 아직 날품팔이나 일용직으로, 노점상, 포장마차 등 힘들고 수입이 적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을 보면 연금받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가. 모든 사람이 다 연금수혜자가 됐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다. 아직도 저소득 층은 그날 벌어 하루를 살아야 한다니 안타까울 뿐이다.

또 퇴직 후 퇴직금을 일시불로 받아 새로운 사업에 손 댔다가 잘못되어 고스란히 퇴직금을 날려 버리고 비관하며 남은 생애를 막막하게 보내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가. 그러기에 연금을 알아야 한다. 우리네 가난했던 옛 살림에서 그저 목돈만이 제일인줄 생각하는 잘못을 이제는 고쳐야 한다. 나의 친구 중에는 남편 퇴직금을 연금으로 하지않고 일시불로 받아 은행에 넣었지만 요즘 이자율의 하락으로 생활을 할 수 없게 되어 한숨 쉬는 것을 보았다.

목돈 굴려 어떻게 하려던 사람들에게 나는 말해주고 싶다. 그저 연금밖에 노후를 맡길 곳은 없다고 곧 추위가 닥쳐오면 환절기에 따라오는 질병과 고통등 나이 들어 불편한 일은 자꾸 생기는데 그때마다 효자처럼 필요를 채워주며 안심케 해주는 연금이 정말로 고맙다.
이제는 우리 나라도 많이 잘살게 되었는데, 이때에 철 따라 행락으로 돈을 허비하지 말고 제3의 인생을 누리고 살 준비를 해야 한다. 여러 가지 방법 중에 연금에 가입하는 것은 기본이요, 의무라고 생각한다.

노령인구가 벌써 절반을 넘어 서고 있다는데 그때를 위하여 일할 수 있는 사람은 모두다 열심으로 일하여 오늘 심고 그날에 거두면 몇 배의 유익을 보게 될 것이다. 직장인이나 자영업자, 개인이나 어떤 사람이라도 참 복지국가를 세우는 일에 앞장서야 하며 선진국민답게 세금도 연금도 나를 위하여 내는 것을 깨달아 아름답고 행복한 노후생활을 준비해야 한다. 좋은 국가도 좋은 사회도 내가 먼저 만들면 행복해진다. 불행을 행복으로 바꿔주고 불평을 감사로 바꿔준 연금아, 고맙데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