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함께 나누고 함께 누려요

제목: (제1회 우수상)작은 그리움 큰 기다림

작성부서: 홍보실
등록일: 2007/04/12
조회수: 2142

내용: 1회 우수상
작은 그리움 큰 기다림

조 도 순/서울 양천구 신월동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발틈에 저는 조심스럽게 대걸레를 내밀어 얼룩진 바닥을 닦아 나갑니다. 그 러다가 까맣게 엉겨 붙은 껌을 보면 멈추고 앉아 뾰족한 칼로 긁어 냅니다. 그위를 다시 대걸레로 닦습니다. 쌀을 씻을때 사용하는 조리도 재털이통위에 모래와 섞인 담배재, 담배꽁초 등의 쓰레기들을 슬슬 밀면 재털이통은 다시 깨끗한 모래만 남아 반짝거립니다. 저의 직업 은 청소부입니다. 저는 이곳의 은행 객장 바닥이나 더렵혀진 화장실 등을 닦으며 저의 초라한 생 활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3년전만 해도 저는 이곳에서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남편의 퇴근시간에 맞추어서 새로 담근 된장 을 알맞게 푼 물에 고추와 호박잎을 송송 썰어 넣고 보글보글 끓인 후 손으로 만든 두부를 넣어 구수하고 감칠맛나는 된장찌개를 준비하는 평범한 가정주부였습니다. 제가 이곳 강서구 염창동에 위치하고 있는 국민은행에 청소부로 취직한 것은 저의 남편이 장애가 되어 돈버는 능력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저의 남편 정수웅은 현재 56세로 1979년 (주)금강제강의 성실한 회사원이었습니다. 기반도 없이 출발한 어려운 집안살림에 늦게 나마 얻게된 그 일자리를 저와 남편은 감사하게 생각해 유일한 아들 태혁이와 어렵지만 정겹게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하루라도 결근한다는 것을 죽는 일 처럼 벌벌 떨며 성실하게 근무했습니다. 남들처럼 무슨 취미활동을 한다던가 하는 것은 생각도 못했고, 10여년간 세월을 항상 시계처럼 출퇴근시간을 지켰습니다.

저 역시 집한칸이라도 마련할 욕심에 먹는 것과 약간의 의복 이외에는 꼬박꼬박 저축을 하였습니다. 못살기때문에 도리를 못함인지 멀게 느껴지는 친척들에게도 미안하 며 섭섭했지만 살아오면서 가난때문에 서러웠던 일중의 하나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대학에 못 보내고 취직시킨 일입니다. 다행히 변함없이 따라준 아들 태혁이는 원망하는 소리도 없이 월급을 타면 살림에까지 보태주어서 저희는 10여년만에 그러니까 1988년 연립주택 한칸을 장만하게 되었 습니다.

그때 우리는 너무나 기뻐서 어깨춤이 저절로 났습니다. 괜히 이웃사람들과 마주치면 허허 웃음을 보내 상대방을 어리둥절하게 했고 빨래를 물에 흔드는 저의 손엔 힘이 넘쳤습니다. 찌개와 김치 간장종지 옆에 소금에 절여 튀긴 고등어자반도 털썩 올라 앉게 되었고 왠지 좋은 일만 계속 될 것 같았습니다. 25살이었던 태혁이 장가 보낼 생각까지 하고, 아무튼지 우리집 마련은 우리 세 식구를 들뜨고, 행복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큰 불행이 저희 가족에게 다가왔습니. 날벼락을 만난 것입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건강하여 아픈데도 없던 남편이었는데 조반 잘 들 고 출근하여 야근까지 한 사람이 퇴근하여 집에 들어서자마자 뻣뻣한 볏짚처럼 휘청 넘어져 쓰러 져 버린 것입니다. 그리고 한참을 자리에 누워버렸습니다. 그날이 1989년 2월 27일 10시 50분의 일입니다.

처음엔 너무 깜짝 놀라고 막막해서 엉엉 소리내어 울었고 차차에는 너무도 허망하고 가 엾어서 몰래 흐느껴 울었습니다. 월급날도 술 한잔 걸치지 못하고 정확한 시간에 귀가하던 남편, 쉬는 날 없이 어려운 살림을 꾸려 나가기 위해 일로 몸이 야윈 그 강직하고 근면한 남편이 알 수 도 없는 몹쓸병에 걸려 일어나지 못하니 저는 괴롭고 서러워서 온몸과 마음이 무너져 나갔습니다. 집을 사놓고, “우리도 이제는 집이 있다. 열심히 산 보람이 있어”하며 기뻐한 남편이 장만한 집 에 이사갈 날짜를 12일 앞두고 쓰러졌으니 더욱 가엾고 허무했습니다.

통나무처럼 쓰러져 눈만 뜬채 꼼짝 못하는 남편은 산송장 같았습니다. 죽고 싶은 괴로움을 아무런 구실도 못하는 불쌍한 남편을 위해 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참았습니다. 슬픔 속에서 저희 세 식 구는 새집으로 이사갔습니다. 그리고 5개월이 숨막히게 흘렀습니다. 그런데 남편이 약간의 차도를 보였습니다. 정신 이 되돌아왔는지 그래서 자기의 신세를 알아차렸는지 울기만 했습니다. 저는 그런 남편을 달랬습 니다. 죽었다면 새 집도 못보았을 텐데 살아서 우리집을 보니 얼마나 다행이냐고 이야기해주었습 니다.

남편을 덕산병원에 옮기어 뇌사진을 찍어 보았습니다. 의사선생님은 혈관이 뭉쳐서 수술을 해야 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수술비용을 묻자 저희에겐 감당하기 어려운 큰돈이었습니다. 수술하면 나 을 가망성이 있느냐고 물으니까 알 수 없다고 대답했습니다. 집을 샀기 때문에 돈이 없었고 나을 가망성도 없는데 집을 다시 팔아서 수술비용에 충당하기에는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수술도 못해본 채 퇴원했습니다.

저희는 한의사를 찾아갔습니다. 침을 맞고 약을 먹으니 다행히도 남편은 일어설 수 있었습니다. 언어장애라 말도 못하고 오른팔과 오른쪽 다리가 마비되어 몸이 기우뚱 기 운채 절뚝거리며 걷지만 화장실에는 혼자도 갈 수 있습니다. 귀한 목숨을 건졌다고 생각하니 이 정도의 장애상태로 남아 있는 것도 얼마나 고맙게 생각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남편은 항상 어둡고 괴로운 얼굴을 하며 지냈습니다. 또 가끔씩은 눈물을 흘리고 멍하니 누워 천정 만 바라 보았습니다. 저희 가족은 정말 불행했습니다. 그때만해도 파출부일이라도 해야 살림이 될 것 같아 일을 나갔는데 일을 하고 돌아오면 남편은 휑하니 돌아누워 깊은 침묵만을 지켰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저는 (주)금강제강에서 연락을 받고 조그만 돈이라도 찾아 쓰자고 국민연금관리공 단 사무실을 찾아 갔습니다. 남편의 주민등록번호를 대고 남편의 연금을 찾으러 왔다고 하니까 회 사는 왜 그만두었느냐고 묻길래 사실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공단직원은 장애연금 담당 자 앞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담당선생님이 하나님처럼 느껴졌고, 저의 감사함은 계속 눈물이 되어 흘렀습니다. 말씀하신 구비서류와 진단서를 준비하기 위해서 동회도 가고 남편을 등에 업고 집에 서 나와 택시를 잡으려고 하는데 택시는 섰다가도 그냥 야멸차게 지나갔습니다. 그 야속함에 화도 나고 차가 없으면 어쩌나?하고 걱정을 하는데 웬 자가용차가 옆에 와 서면서 타라고 했습니다. 얼 떨결에 차를 타니까 젊은 청년이었습니다. 자기의 어머니도 아저씨와 같은 환자라면서 친절하게 덕산병원까지 태워다 주었습니다.

너무나 고맙고 감사해서 차비라 생각말고 점심이나 사 잡수시라면서 만원을 주니 그 청년은 “아저씨 약이나 사드리십시오”하면서 사양하고 그냥 가버 렸습니다. 그 청년에게는 두고두고 감사를 드립니다. 아무리 인정없는 사회라지만 좋은 사람이 더 많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하고 진단서와 구비서류를 준비하여 국민연금관리공단에 제출하였습 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남편의 표정은 국민연금에 대해 반신반의 하는 것 같았습니다. 실패한 어 둠의 삶이니 무엇인들 쉽게 믿을 수 없었겠지요.

그 얼마후 편지함에 서신 한 통이 왔습니다. 뜯어보니까 국민연금관리공단에서 보낸 편지로 국민 연금이 은행에 지급되었다는 것입니다. 너무도 반갑고 서러워서 저와 남편은 서로 부둥켜 안고 울 었습니다. 저는 말했습니다. “당신이 노력한 결과이니 이것은 당신 돈이예요”라고. 그 통지서는 저에겐 물론 남편에게는 큰 기쁨이었습니다. 남편의 기분이 나아졌기 때문입니다. 침통하고 슬픈 표정의 남편이 이제는 돌아누워 외면하지도 않았고 마주치는 눈빛은 다정하기까지 했습니다. 장애 연금은 쓸모없다고 느끼는 자신에 대한 미움대신에 살아있음에 대한 떳떳함을 남편에게 준 것 같습니다.

첫 연금 사십만칠천원을 받고 남편은 엉거주춤 서서 왼손으로 돈을 세어 보았습니다. 세고, 또 세고 남편은 흐뭇한 표정을 지었 습니다. 저는 그때의 남편의 얼굴을 보고 또 남몰래 울었습니다. 그 돈으로 저는 남편의 약도 사 고 남편이 먹고 싶은 것도 삽니다.

최근에는 또 고맙게도 사십팔만원으로 연금이 올랐습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인데, 받게된 국민 연금을 인상까지 해주니 그 고마움이야 오죽하겠습니까? 저의 남편의 생활은 애처롭습니다. 마음 은 생생한데 말도 못하고 연필과 종이를 주며 할 말을 쓰라고 해도 왼손이라 쓰지 못하고 밥을 먹을 때엔 어린애처럼 반은 흘립니다. 또 저희집은 삼층이라 남편은 계단을 오르내리지 못하기 때 문에 하루종일 혼자서 집을 봅니다. 날던 새가 갇혀 있는 모양이니 무척이나 가엾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괴로운 상태에서도 남편의 기분은 안정을 찾고 있습니다. 이발을 해주고 목욕을 시켜주면 서 오래오래 살라고 말하면 고개를 끄덕거리며 좋아합니다. 국민연금이 나오면 중얼거리며 왼손으 로 열심히 세어봅니다. 5시면 어김없이 집에 돌아오는 나를 기다리는 일이 남편의 작은 그리움이라면 세달마다 꼬박꼬박 나오는 연금을 기다리는 일은 남편 의 큰 기다림입니다.

저의 남편에게 웃음을 준 국민연금! 그리하여 남편에게 즐거운 기다림을 준 국민연금에 대해 저는 깊이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그것은 어떤 도움보다도 큰 도움이었습니다. 요 즈음 그러한 도움이 저희보다도 어려운 사람들에게 나누어질 수 있었으면 합니다.

청소를 끝내고 시계를 보니 오후 네시반입니다. 손을 씻고 옷을 갈아 입으며 마음은 집에 있는 남 편에게 가 있습니다. 창문을 열어 놓고 목을 빼며 나를 기다리고 있을 남편의 야윈 얼굴을 생각하 면 마음이 급해집니다. 오늘은 리어카에서 포도를 사야겠습니다. 마주치면 웃으며 흔들 남편의 왼 손을 생각하며 저는 총총히 은행문을 나섭니다. 문밖에는 환한 햇빛이 나를 비추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