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제6회, 우수상)아주 특별한 만남

작성부서

홍보실

등록일

2007/04/13

조회수

2160

내용

제6회 우수상
아주 특별한 만남

정 미 진/경상북도 영주시 가흥1동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우울한 아침이다. 삶을 그리 많이 살아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삶의 무게는 나를 일상에서 이탈하게 한다.

나는 지금 24번째 세상나기를 하고 있다. 항상 삶에 대한 열정과 호기심이 넘치던 모습은 그새 어디로 사라져버렸는지, 참 행복했었다는 기억보다는 그래도 잘 견디며 잘 성장했다는 기억이 더 맞는 내 유년. 그 유년의 기억엔 가족이 있다.

아버지! 내가 지금 사회인이 되어 당신이 거쳐간 고단한 삶을 밟고 있지 않다면, 그래서 내가 당신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나는 이렇게 당신을 회상하며 글을 쓰진 않았으리라. 당신 삶의 1/10쯤을 이해하는데 24년이 걸렸다. 나머지를 모두 이해하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몇 배를 더 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나는 당신을 생각하면 가슴 가득 눈물이 고인다.


처한 환경 때문에 아버지를 외면했던 나
기억을 거슬러 오르면 항상 따듯한 겨울 햇살과 함께 다가온다. 유난히 눈이 시리던 햇살, 나는 철이 없었다. 마흔 여섯의 아버지는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갑작스럽게 떠나셨다. 여느 때와 같이 새벽까지 아르바이트를 하고 들어와 대낮이 되도록 자고 있는 나는 아버지의 신음을 술주정으로 치부해 버렸다. 밀레니엄이다. 새 천년이다. 한껏 고조되어 있는데 내가 처한 환경은 날 좌절감에 빠지게 했기에 난 아버지를 외면했다. 아버지. 당신은 겨우겨우 옷을 갈아입고 당신이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막내아들의 등에 업혀서 병원에 기시고 채 한시간도 못되어 세상과 이별을 고하셨다. 1999년 12월29일. 그 날은 남들이 흔히 말하는 하늘이 무너지는 고통과 아픔을 느끼기엔 너무나 어이가 없었다. 아버지는 마치 내가 "아빠 나왔어. 일어나, 나 좀 봐"라고 하면 금방이라도 일어나실 것 같은 모습이었다. 사람의 목숨이 그렇게도 허무한 것이었던가? 생명은 신이 정해주는 것이기에 당연히 떠남도 유종의 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얼마나 생명은 덧없는 것인지. 가족이 많은 것도 친.인척이 살가운 사이도 아닌 우리 가족은 허둥지둥 아버지를 보내고, 어머니와 난 관공서를 다니며 아버지를 하늘로 편히 보내드리기 위해 이승의 흔적을 지우기 시작했다.

기진 것이 없는 사람은 정리할 것도 그리 많지 않았다. 원인 불명의 사망. 병원에서 조차도 아마, 폐출혈인 것 같다고 진단을 내렸다. 당신은 삶조차도 남들에게 업신여김과 무시 속에서 살았듯이 가시는 길도 허무하게 가셨다. 모든 것을 정리하고 결국엔 보험회사에서 마저 그 동안 입금한 원금마저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우리는 아버지를 원망했다. 살아갈 일이 막막했다. 그 막막함이란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결코 이해를 하지 못한다. 그리고 아버지에 대한원망…


떠나신 아버지가 남겨준 유족연금
그때, 마지막 희망을 준 것이 국민연금이다. 처음엔 국가차원에서 하는 일이기에 그리고, 그리 많은 수입이 있는 가정도 아니기에 다달이 조금씩 내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매월 얼마씩의 유족연금을 받고 있는 것이다. 매월 같은 날에 들어오는 국민연금은 우리가족에게 아버지를 그리워하게 한다. 돈의 액수보다는 갑작스럽게 떠나신 분에 대한 우리가족의 원망하는 마음을 아버지는 이렇게 국민연금으로 달래주신 것이다.

동생은 더 이상의 학비가 부담이 되어 누나들에게 대학공부를 양보하고 아버지가 가신 한달 뒤 살을 에는 추위 속에 입대를 했다. 그 자그마한 어깨 가득 묻어나는 절망감을 우린 서로 외면했다. 말로 위로하기에 우린 너무나도 서로를 잘 이해하고 있었기에. 난 마지막 남은 1년을 더 공부하기 위해 마음이 무뎌졌었다. 장학금을 받기 위해 매일 도서관에 박혀 있어야 했고, 직장도 잡아야 했다. 그런 마음의 조급함과 짜증이 더 이상 주체할 수 없을 때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국민연금이 통장에 들어 왔더라고. 아! 그때서야 난 머리 속에서 내몰았던 아버지를 생각 했다.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고 수없이 다짐하고 이를 악물던 내게 그래도 역시 아버지시구나 하는 울컥한 마음을 들게 했다. 끝까지 무책임하다고 원망하던 내 마음의 응어리를 아버지는 국민연금으로 녹여 주신 것이다, 아버지 삶이 전부는 결국 가족이었다. 사랑은 그래서 내리 사랑이라고 하는 것인가 보다.


표현 한 번 못했던 아버지에 대한 사랑
20대가 되기 전엔 아버지를 진정으로 사랑함에도 불구하고 표현해 보지 못했다. 사랑보다는 창피란 마음이 앞섰기에. 내 기억의 아버진 항상 막노동과 술에 찌든 모습이었다. 혹시라도 길에서 보면 창피한 마음에 고개를 숙이며 지나가 버리게 되는 모습. 그때 당신의 흐트러지는 발걸음을 내가 왜 부축하지 못했었는지, 이제는 아버지가 그렇게 힘든 인생을 그래도 사셔야 했던 이유가 우리 3남매 때문이었음을 안다.

가진 것이 없는 살림에도 우리 3남매를 악착같이 4년제 대학에 보내셨다. 안정적인 수입이 있는 집에서도 힘들다는 사립대를 셋이나 보내신 그 마음을 안다. 당신이 살아온 삶 보다는 윤택한 삶을 사라는 당신의 소망, 대학을 졸업하고 이제 사회 초년생이 되어서야 아버지께 고마움을 느낀다. 책상 앞에서 펜대를 굴리며 편안히 살기를 바란 아버지의 못다 이룬 소망을 이제야 이해한다. 당신 삶이 너무 나도 고단했기에 자식들에게는 대물림 하지 않으려고 악착같이 살던 모습을 당신이 계시지 않은 이제야 이해를 하다니. 늦은 후회를 한다. 지금 당신은 너무나도 멀리 계신데.. 그리움에 목이 메인다.


미래를 생각하면 든든해
며칠 전엔 국민연금관리공단에서 내가 그 동안 가입했던 연금 내역서가 수신되었다. 아버지가 우릴 위해 가입하셨듯이 지금은 내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서 국민연금에 가입했다. 남들은 당장 가벼워진 월급 봉투에 연연해서 그 중요성을 알지 못하지만 연금의 고마움을 아는 나는 매월 월급명세서를 보면 즐겁다. 아직 몇 달 되진 않았지만 마음 가득 묻어 나는 뿌듯함이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큰 기쁨이다. 내가 정말 내 밥벌이를 하는 사회인이 되었다는 인증서 같은 기분이란… 미래를 생각하면 든든하다.

이 계절을 재촉하는 비가 다 내리고 나면 가을이다. 만물이 영글어 가는 계절. 이 계절이면 유난히 아버지 생각이 난다. 진흙 먼지에, 술에 절인 모습으로 혀가 꼬부라진 목소리로 크게 소리치며 아들 딸을 부르던 모습을 생각하면이 눈이 시리다. 아버지가 돌아 가신지 어느새 2년이 되어가는 지금 우리 가족은 삶을 향해 도약중이다. 아버지가 몸으로 보여주신 사랑을 마음에 새기며 세상에 알찬 뿌리를 내리기 위해 생의 열정을 다해서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