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제6회, 장려상)6개월 적금 만기로
작성부서
홍보실
등록일
2007/04/13
조회수
2201
내용
제6회 장려상
6개월 적금 만기로

성 정 미/포항시 남구 지곡동

참으로 행복하고 범사에 감사한 요즘이다. 서른 넷, 시간의 소중함을 너무나 잘 알고, 인생의 맛을 아는 생의 가장 가운데 있다. 곁에는 멋진 하루 함께 시작하는 동갑내기 내 남편이 있다. 이제 막 시작되는 단풍과 코스모스가 예쁘게 핀 요즘, 아련히 남아있는 슬픈 추억 하나가 떠오른다.

신혼시절 기막힌 사건하나. 7년 전 너무나도 끔찍해 현실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날, 그날은 내 동갑내기 남편이 사고를 당한 날이다. 그날 이후 후천적 장애를 안고 남편은 다시 시작해야 했다. 당시 스물여덟의 남편은 인정할 수 없는 현실이 너무 괴로워 눈물이 뒤범벅인 채 매일 매일을 보냈다. 남편이 너무나 가여워 우린 서로를 부둥켜 안고 울었습니다.

그 무렵 둘째 아이의 출산 일을 일주일 남겨둔 채 남편의 사고소식으로 충격을 받은 난 산부인과 모든 검진을 다시 받아야 했다. 더 이상의 불행은 없어야 했다. 다행히 태아는 문제없었다.

두 번의 수술 끝에 마취가 풀리지 않은 채로 병실로 실려온 남편을 보자 병원 침대 발 끄트머리만 간신히 잡고 있던 난 흐르는 눈물을 주체 할 수 없었다. "그래, 당신의 모든 것은 내가 대신해 줄께요". 그는 말없이 눈물만 보였다. 펜을 잡고 있는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니 눈물 고이고 가슴이 아프다. 수술은 끝났지만 오른손엔 의수를 낀 채로 지내야 한다는 수술 주치의의 말은 가슴을 내리치는 듯 했다.


본인 의사와는 상관없이 살게 된 장애인으로서의 삶
만삭인 몸으로 정형외과 병동에서 남편을 간호 하고 있는데 내게도 진통이 시작되었다. 병실 엘리베이터 앞에서 배웅해주던 남편. 그는 남은 힘 모두 실어 내 어깨를 굳게 잡아주었다. 아무런 말이 필요치 않는 시간이었다.

다니던 산부인과를 접고 남편 입원실 한 정거장 건너에 있는 산부인과에서 출산 수속을 밟았다. 출산 준비실, 옆 침대 산모들의 고통소리와 그날 나의 울음소리는 분명 달랐으리라. 진통으로 인한 울음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울먹임이었다.

내 남편 남은 사회생활을 어떠한 모습으로 해야 하나? 다시 무엇을 할 것인가? 난 어떻게 해야 하나? 이제 곧 태어날 우리 작은아이와 맏형이 될 세살박이 큰 녀석, "그래 걱정을 말아요! 수없이 많은 날들 당신위해 있어 줄께요." 눈물을 삼키며 다짐했었다.

간호사의 눈을 피해 출산한 내게로 와준 남편. 진통의 순간까지 분만실 앞에서 얼마나 힘들어하며 초조해 했을까? 간호사가 들고 온 남편의 짧은 메모지. 어설프게 써 내려간 왼손의 글. "내가 있으니 울지마라. 내 둘째 녀석 참 건강할꺼야. 우리 이제 그만 울자" 삐뚤삐뚤 쓴 글에 가슴이 어찌 그리 메이든지. 3.75㎏의 손가락 발가락 모두 건강한 남자아이를 낳았다. 두 눈 가득 눈물을 안은 채 "고맙다. 고맙다. 건강해서 고맙다." 그이는 연거푸 말했었다.

그렇게 보낸 객지에서의 병고 끝에 우리가족은 넷이 되어 우리들의 둥지로 돌아 왔었다. 그 후 7년의 시간을 지내면서 그날보다 더 많은 눈물과 더 많이 괴로운 날들이 있었다. 내가 남편의 고통을 대신할 수는 없었다. 한계가 있었다.

본인 의사와 관계없이 예비군 훈련이면 제외되고 포항시 등록 장애인의 명부에 그의 이름자가 오르게 됐다. 동사무소에서 국민연금에 까지. 평소 급여 명세서에 찍힌 국민연금 지출액. 그로 인해 국민연금관리공단에 까지 장애등급이 기재됐다. 가족에 대한 책임감에 몸서리 치는 듯했으나 시간이 약이었다. 그보다 더 심한 중증장애인을 생각할 때면 부끄럽다는 말까지 했으니까. 내 아들과 공을 칠 수 있는 건강이 남아있음에 감사했고, 마라톤 풀 코스에도 도전하며 땀에 젖어 연습하던 모습, 결국 완주하는 의지에 얼마나 안도했던지. 남편은 점차 심리적으로 안정을 찾아갔다.


국민연금은 늦깍이 대학생 남편의 등록금
그와 난 생활신조를 바꾸었다. '스마일' 나에게 건강을 주신 것에 감사하며 항상 즐겁게 살자. '외유내강' 신체결함은 있지만 완벽한 행동으로 자신을 세우며 남에겐 항상 물러 설 줄 알아야 한다. 스마일과 외유내강 그에겐 참 잘 어울리는 단어들이다. 매월 입금액은 그리 크지 않지만, 국민연금이 입금되는 날이면 6개월짜리 적금통장이 칸을 메워간다.

2000년이 밝으면서 남편은 공부 시작했다. 마흔이 되기 전, 그이는 공부해서 청소년 상담 일을 해보고 싶어한다. 무언가에 집중하고 싶은 생각일 것이다. 퇴근 후 피곤함을 감수해야 하지만 끙끙대며 열심인 모습이 다행스럽다. 포항 모 대학에 야간수업을 받으러 가지만 늦깍이 대학생활에 즐거워 한다. 지난 7월, 6개월짜리 적금을 타서 2학기 등록을 했다. 또다시 국민연금이 통장에 찍히는 말일이면 6개월의 적금이 시작된다. 다음 3학기를 위하여.

8학기가 끝나는 날이면 그도 학사모를 쓰고, 6개월 적금이 8번 만기가 되는 우수 고객이 되어있을 것이다. 야간 수업을 마치고 새벽 1시경에 귀가하는 남편을 위해 부드러운 꿀물 한 잔을 준비해 볼까 한다. 변함없이 이달 말에도 3학기를 위해 6개월짜리 만기 적금을 넣으러 은행을 찾는다. 국민연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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