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제7회, 장려상)어머니의 기도

작성부서

홍보실

등록일

2007/04/13

조회수

2219

내용

유난히도 눈부신 햇살이 창가를 노크하는 생쾌한 새벽아침! 남편이 가장 좋아했던 청국장이 뚝배기에서 보글보글 끓고 있는 평화로운 아침. 먼저간 아들의 영혼을 위해 팔순의 노모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새벽기도를 오늘도 어김없이 다녀오십니다. 노모의 방에서 나는 기도소리가 크게 들리는 날에는 노모의 눈가는 붉게 물들어 있습니다. 왠지 오늘 아침의 청국장 내음이 온 집안에 가득차 남편이 환한 웃음을 지우며 안방에서 금새 걸어 나올 듯 합니다. 참고 참았던 소리 없는 눈물이 흘러내립니다. 시어머니와 나는 가족들의 눈을 맞추지 못한 채 아침식사를 합니다.

죽음의 예고
안방에서 들려오는 잠이 덜 깬 목소리 “어깨가 결리고 담이 들은 것 같아요! 파스 있으면 가져와 봐요!” 남편이 아침부터 일어나 아픔을 참는 듯한 가느다란 소리를 지른다. “몸 생각해서 술 조금만 먹고 운동 좀 하셔요!” 걱정스럽게 말하곤 남편의 어깨와 등에 4~5장의 파스를 붙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마지막으로 본 남편의 어깨가 될 줄......

하루라도 떨어져 살 수 없는 부부
17살의 나이에 남편을 만나 홀시어머니와 두 아들과 예쁜 딸을 두었습니다. 큰 아들은 많이 도와주지 못했지만 스스로 주경야독하여 박사가 되었고 둘째 아들과 딸도 버젓한 직장에 취업해 성실히 사회의 일원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내 나이 48세에 남부럽지 않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결혼해서 남편과 나는 의류소매업을 20년 동안 운영해오고 있었습니다. 아침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24시간동안 서로의 얼굴을 보며 생활하였고 숨소리만 들어도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알 정도였습니다. 남편도 어려서 전쟁 통에 아버지를 잃어 자녀들에게는 남달리 애정을 갖고 최선을 다하는 최고의 아버지, 애정표현이 풍부한 남편, 그리고 홀어머니의 든든한 아들이었습니다. 경제적으로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뭐하나 남부러울 것 없고 행복하기만 했습니다.

국민연금제도와의 만남
20년동안 남편 명의로 사업자등록을 내어 의류소매업을 하고 있던 남편은 1999년 4월 1일로 전국민 도시자영자 확대실시에 국민연금과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실시 당시 국민연금 직원들의 여러 차례의 유선독려, 우편물, 내방 안내 설득으로 인하여 국민연금제도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제대로 운영된다면 서민들에게도 복지혜택을 받게 되겠다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부정적인 인식 또한 갖고 있었습니다. 남편은 남들이 하면 그때 가서 한번 생각해보겠다며 직원들의 설득을 일축했습니다. 어느 날 저녁시간, TV매스컴에서 국민연금에 대한 홍보프로그램 시청 후 국민연금에 대한 이야기를 가족들과 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둘째 아들이 직장 국민연금 가입자로 납부중이었으므로 이야기를 주도했습니다. 아들도 남편과 같이 국민연금제도의 취지 등에는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었지만 의구심 또한 있었습니다. 의구심의 주 골자는 “몇 십년씩 가입해서 정말로 60세가 되면 받을 수 있을까? 또한 얼마 되지 않는 금액을 내고 60세 이후 평생연금을 받을 수 있을까?” 등 부정적 의견이 많았습니다. 남편의 곁에서 가만히 듣고만 있던 막내딸이 “아빠의 연금은 제가 넣어 드릴게요!”하고 말문을 열었습니다. “우리는 아직 연금수급하려면 세월이 많이 남았고 불안하지만 아빠는 최소 10년만 납부하면 평생 용돈정도는 될 것 같아요. 공무원연금 같은 거라면 아빠 돌아가실 때까지는 나오지 않겠어요?” 그리고 “아빠가 오래 사시다가 엄마보다 먼저 돌아가시면 유족연금도 받을 수 있다 하고요. 아빠의 노후는 내가 책임질께요” 가만히 듣고 있던 남편의 얼굴에는 딸이 아빠를 생각하는 기특한 마음에 흐뭇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날 즐거운 저녁 남편은 통닭 2마리와 생맥주로 저녁모임을 마무리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떠나버린 남편
평소 남편은 병원 가는 것을 무척 싫어했습니다. 아니 병원을 무서워했습니다. 하지만 남들에게는 “난 지금까지 병원 한번 가지 않을 정도로 건강에 자신있다” 라고 무서움을 대신 했었습니다.

유난히도 햇살이 눈부신 그날 오후, 남편은 자신의 몸에 이상을 느꼈는지 나에게도 아무말 없이 병원을 다녀온 모양이었습니다. 숨소리만 들어도 알아차릴 수 있던 나는 남편에게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났고 본인도 감당할 수가 없어 당황하고 있다는 것을 직감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 이후 남편은 얼마동안 아무 말도 없이 멍하니 쇼윈도우 밖만 쳐다보는 습관이 생겼고, 나도 두려움에 남편에게 아무 말도 건네지 못한 채 침묵만이 흘러갔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남편이 먼저 말문을 열었습니다. 난 맘속으로 간절히 기원했습니다. 아무것도 아닐거라고...... “감기증상이 오래가서 주사 맞으러 병원에 갔다가 의사의 권유로 진찰을 했으며, 초음파 촬영을 했는데... 간암으로 의심되니... 큰 병원에서 정밀진단을 받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고 되도록 빨리 서울 큰 병원으로...”하며 끝말을 잇지 못했다. 그 짧은 시간의 간절한 기원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느낌. 이것이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구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압전류에 감전이 된 듯 온몸을 가눌 수가 없었고 떨리는 목소리를 애써 감추며 “아니야! 오진할 수 있어! 시골 촌병원이 다 그렇지! 큰 병원에 가서 다시 진료 받으면 암이 아니라 염증이 있는 것 일거예요!” 어떻게든 남편을 안심시켜야한다는 생각으로 아니 쓰러져가는 나 자신을 위해 어떻게 하든 현실을 외면하려는 최후의 발버둥이었습니다.
서울 큰 병원 진료를 하였고 진료결과 간암말기 판정, 길어야 6개월 정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사망선고와 다름없는 것이었습니다. 너무나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남편을 그 짧은 6개월의 시간도 기다리지 못한 채 3개월 만에 우리 가족의 곁을 말없이 떠나버렸습니다.

또 다른 역경
어두운 땅속에 남편을 묻고 며칠이 지나 또 한번의 어려움이 다가왔습니다. 남편명의의 은행 대출금 상환 독촉, 남편의 병원비 카드대금, 대출금 보증으로 인한 대위채무 등 사망과 동시에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터지고 말았다. 운영하던 가게를 처분하였고 어떻게든 살아보겠다 했던 사업마저도 실패로 빚더미에 앉게 되었습니다. 사보험에 가입되었던 건강보험과 생명보험 또한 여기저기 작게 가입한 사보험을 알아보았습니다. 하지만 20년, 15년 만기 가입되었던 보험이 지난달에 만기로 해약되었던 것이다. 사보험으로 의료비나 사망보험금 등을 받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때 심정은 남편 곁에 같이 묻히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시어머니 기도의 힘
시어머니의 말없는 격려와 새벽기도의 힘 덕이었는지 냉정하게 현실을 받아들이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한발짝 나아설 수 있었습니다. 직장을 다녀온 국민연금에 대해 문의해 보았다고 하며 웃는 얼굴로 나를 맞이하였다. 막내딸은 몇 번 납부하지 않고 아빠가 사망해서 원금이라도 돌려받을 수 있나하고 문의를 했다고 하였습니다. 뜻밖에 국민연금은 가입 후 최소 1개월 이상만 납부이력이 있고 가입 중에 발생된 질병으로 사망 할 경우에는 배우자가 최우선적으로 유족연금을 수급받을 수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고 자랑하듯 말했습니다. 가족회의 때 아빠의 국민연금보험료를 대신 납부하여 준 본인도 스스로가 대견했던 모양입니다. 물론 노령연금을 받기를 원했겠지만...... 그동안 국민연금 등 사회보험에 대한 막연한 생각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혜택을 받게 되니 그 소중함을 말로 표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15년, 20년 동안 보험료를 납부한 사보험은 원금에 이자는 커녕 원금도 보전해주지 않았는데, 7개월 연금보험료 납부하고 평생 연금을 지급받을 수 있다는 소식은 저에게는 커다란 기쁨이었습니다. 나에게도 사회가 돌려주는 것도 있구나 하는 기쁨이 그간 맘고생에 추웠던 가슴을 눈 녹듯이 맘을 편하게 하여주었습니다.

며칠 후, 기쁘기도 하였지만 남편의 빈자리를 대신하여 돈을 받는구나 하는 씁쓸한 생각으로 공단을 방문하였습니다. 몇 번 납부하지 못하고 연금을 받아 미안한 마음으로 서류를 제출하였습니다. 이에 유족연금 담당자는 친절한 설명과 유족의 마음을 헤아리는 듯 성심성의껏 안내해 주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와 시어머니께 아들이 하늘에서 어머니 용돈하시라고 통장으로 보내왔어요 하고 시어머니께 설명하여 드렸습니다. 시어머니는 소리없이 눈물을 흘리시더니 나의 두 손을 꼭 잡고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들을 먼저 보낸 아픈 맘과 남편을 잃은 며느리에 대한 위로였을 것입니다.

긍정적인 사고의 발상이 된 국민연금
남편의 사망은 그의 그늘에서만 안주하며 살았던 나에게 힘들고 막막한 어두운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시어머니의 기도와 가족들의 사랑, 그리고 국민연금은 나에게 새로운 생활에 좀 더 적극적으로 적응할 수 있도록 해준 희망의 씨앗이었습니다. 국민의 일원으로 국가로 받을 수 있는 권리라 할까요! 국가가 관리하고 그 지급을 보장하는 국민연금. 유족연금 금액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사회의 일원으로서 무언가의 도움을 받고 있다는 자체가 나와 같은 처지 또한 더 어려운 처지의 사회의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며 살아야 한다는 긍정적인 사고의 전환이 되었습니다. 오로지 나의 가족들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서만 앞만 보고 달려온 이기적이었던 나의 인생에 한번쯤 주변을 돌아볼 수 있게 해 준 사회보장인 국민연금!

인간에게는 그 절망과 고난 뒤에는 희망과 그에 합당한 보상의 씨앗이 숨어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다만 그 보상의 씨앗을 싹 피울 수 있는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최소한의 노후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준비가 필요하다라고 생각합니다.
노후는 선별하여 우리들의 곁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미리 준비하고 그것을 이용하는 것도 세상을 사는 지혜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디 국민연금제도가 더욱더 성숙되고 사회복지제도의 기틀이 되어 어렵고 힘든 서민들의 든든한 동반자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아울러,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국민이 주인되는 국민이 즐거워하는 국민연금제도가 되기를 기원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