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제2회 우수상)소박한 꿈을 가꾸는 기쁨

작성부서

홍보실

등록일

2007/04/12

조회수

2137

내용

2회 우수상
소박한 꿈을 가꾸는 기쁨

서 병 홍 / 서울시 은평구 갈현동

국민연금제도는 이미 박정희 대통령시절에 법까지 제정되어 실시 직 전에 보류된 적이 있다.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마당에서 사회보장의 일환으로 의료보험과 국민연금 은 가장 기본적인 제도이기 때문에 그 시행을 서둘렀던 것이지만 당시의 경제형편상 기업측의 부 담이 과중하다고 시행이 보류되었다가 일부 모법과 세칙을 개정하여 1988년부터 실시에 들어간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 나는 상공부 산하의 사단법인인 경제 단체에 근무하던 때이고 시행 첫해에 이미 60이 가까 운 때여서 별로 흥미가 없었다. 흥미가 덜한 첫째 이유는 해마다 진행되는 인플레였다. 20년 이상 을 부어야 퇴직후의 생계비로 지급되는 연금인데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미루어 인플레 하에서 20 년후의 금액에 대한 어느 정도의 보장이 생각나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젊었을 때 15년 만기로 가입했던 생명보험을 만기가 되어 타보았는데 가입당시로서는 오십만원이며 보통 집을 한채 살만한 금액이었는데 한차례의 화폐개혁과 10여년간의 인플레 탓으로 70여만원을 받아 보아야 한달치 봉급액에도 미치지 못하여 이 제도는 기본적으로 인플레가 진정되지 않고는 실효가 없다는 믿음때문에 그냥 정책적으로 하는가 보다라고 생각했었다.

둘째는 당시 이미 내나이 55세를 넘고있어 곧 정년이 닥쳐 올 것이기 때문에 연금을 적립해 보아 야 별 이득도 없고 정년퇴직 때 한 몫에 받아도 크게 도움이 안될 것이라는 사실때문이었다. 그런 마음이었지만 법에 의해 매월 일정액을 급여에서 공제하고 회사측에서 보태어 내고 있었기 때문 에 그냥 그려러니 하고 무심히 지나갔었다.

만 2년의 세월이 흘렀다. 다행히 89년 부장에서 이사로 승진되어 정년(60세)으로 인한 퇴직을 면 하게 되었다. 그렇지만 60이 되는 때에 연금공단으로부터 통지가 왔다. 제1차 특례노령연금 수혜 대상에 해당되니 계속해 연금을 불입하여 만 5년이 되면 특례노령연금을 타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그리하여 특례노령연금을 받기 위해 불입하려면 임의 계속가입을 신청하라고 했다.

솔직히 말해 당시 큰 기대는 두지 않았지만 얼마 안되는 기왕의 불입액을 찾아 쓰기 보다는 “특례노령연금”을 받는 쪽이 나을 것 같아 계속 불입을 신청하고 그 후 92년까지 만 5년을 불입했다. 93년 초에 임기가 끝나 퇴직을 하게 되었을 때 “특례 노령 연금을 지급하게 되었으니 소정의 절차를 취하라”는 통지를 받았다.

아무튼 단 5년 밖에 불입하지 않았는데 국가에서 특례로 연금을 준다니 말하자면 가장 먼저 헤택 을 받는 셈이어서 내심 무척 고맙게 생각되었다. 뿐만 아니라 가족들에게도 어딘가 자랑스러웠고 복지라는 것이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이 아닌 것은 물론 그 복지의 혜택을 마치 나 혼자 받는 기분 이었다.

그래서 연금증서를 받아 오던 날 저녁에 딸들이 있는 자리에서
“아버지는 금년(93년)부터 연금을 받게 되었다. 그것도 특례로 단 5년밖에 불입하지 않았는데도 이렇게 증서까지 주면서 거래은행으로 넣어주기로 되었다.”
“아버지 축하해요. 그런데 얼마씩이나 주는데요?”
“한달로 치면 10만원이 채 못되더라. 그래서 분기별로 모아 준다더라. 3. 6. 9. 12월의 1년에 네번 30만원 가까이 받게 된단다.”
“에게… 겨우 고것이에요. 연금이라기에 아주 아버지 생활비정도 주는 줄 알았는데…”
딸 아이는 금액이 적은데 무척 실망한 모양으로 대수롭지 않게 말하였다.

“그렇지 않다. 내가 계산해 보니까 나 개인의 급여에서 낸 것과 회사가 보내어준 금액을 포함해 5년간 불입한 총액이 겨우 200여만원 밖에 안되는데 매년 120만원 가까이 받게 되니 그게 어디냐. 그리고 너희들이 나 중에 퇴직을 할 무렵이면 가입기간이 길어 글자 그대로 생활비가 될만큼 연금을 받게 될 터인데 얼마나 다행한 제도이냐.”
“그래도 한달에 10만원은 좀 너무한 것 같아요.”
“아닐 것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내 경우는 봉급액이 많아 등급이 높기 때문에 그 정도라 도 되지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라면 더 적을 것 아니냐, 고맙게 생각해야지…”
“아버지 용돈은 되겠네요. 하기사 없는 것보다는 낫겠네요.”
식구라야 막네 딸 하나, 아들 녀석 하나에 아내를 합쳐 넷인데 이렇게 한차례 공론이 돌았고 드디 어 첫 연금이 거래은행인 상업은행 통장에 입금이 되었다.

나는 마누라에게 그 통장을 보여 주면서 “여보! 정말 연금이 나왔구려. 이거야 말로 마치 공돈 같소. 뭐 좀 뜻 있게 쓸 길이 없을까?”
“30만원이 채 안되는 구먼요. 기왕 줄거 30만원을 채워 주지 않고…”
“그거야 규칙이니 어쩔 수 없지 않겠소. 나 이 돈을 그냥 두면 써 버릴 것이니 따로 30만원을 채워서 신탁에다 넣어 모아 보겠소. 한참 지나면 꽤나 목돈이 될꺼요.”
“알아서 해 보세요. 아이들에게 손 벌리기 보다는 낫지 않겠어요.”

이렇게 하여 나는 이 연금을 다시 30만원으로 채워서 가계신탁에 넣었다. 작년(1993년) 1년치가 원금만 120만원이 되었는데 금년(1994년)에는 전년도 지급액에 물가상승을 더하여 이번에는 30만 원이 조금 넘게 받게 되었다. 그것이 이미 두번 그래서 원금만 180만원에다 신탁이자까지 200만원 이 넘는다. 지난 6월 연금을 타서 신탁에 넣고 돌아온 날 밤 잠자리에서 통장을 꺼내놓고 양주가 나란히 누워

“여보! 처음에는 별것 아닌것 같더니만 벌써 상당액이 되었구료. 참 세월도 빠르지… 얼마 안있 으면 1천만원을 바라보겠오.”
“영감은 참! 아 당신 나이 잡숫는 것은 생각하지 않고 연금 늘어나는 것만 생각해요. 이 돈이 늘 어가는 만큼 영감 수명이 줄어 간다구요…”
“허허… 그런가. 요즘 말로 말이 되는데…. 어쨌던 좀 더 많아지면 우리 기운이 있을 때 양주가 여행이나 합시다.”
“영감은 역마살이 끼었어요. 그만큼 세계 각국을 누비고 다녔으면 됐지 또 어디를 간다는 거 요.”
“아니… 출장이 아니고 진짜 관광 말이오. 당신과 손 잡고 우리 유럽을 아주 일주합시다. 배낭 메고 기차 타고 아무 부담없이 그렇게 말이오.”
“그 보다는 미국에 있는 둘째 학위 받을 때 우리 졸업식 보러 갑시다.”
“그래! 그길로 아주 대서양을 횡단하면 되겠구먼.”
“여보 영감, 철좀 드시오. 기껏 연금 2년째 받아 놓고 꿈이 한창이요. 여행 할 때를 위해 몸이나 조심하셔야지. 항상 젊을 때 같은 줄 아시오?”
“그래, 당신도 몸 조심하고… 우리 아이들 걱정 안하게 건강하게 지냅시다.”

사실 특례노령연금수혜자가 얼마나 되는지는 몰라도 5년간의 불입으로 이 정도의 혜택을 주는 것 도 정부로서는 큰 부담이 될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최근 농어촌대책의 일환으로 농촌에도 연금제도가 시행될 예정이라고 한다. 다행한 일이 다. 따지고 보면 자신의 급여에서 일정율을 내고 또 기업이 거기다 일정율을 보태어 적립했다 받 는 폭이지만 그런 제도가 있다는 것은 우리들 생활에 든든한 느낌을 주고 생활의 안전을 얻는데 큰 도움이 된다. 한번은 사위 둘이 외손자들을 데리고 놀러와 함께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나온 이 야기다. 세째 딸아이는 부부교사이고, 맏이는 부부가 은행원이다. 교사 사위가 먼저 입을 연다.

“요즘 아파트 값도 내리고 증권도 신통치 않고…봉급도 그렇다고 자꾸 오를 일도 없으니 장래를 생각하면 어쩐지 불안해요.”
그러자 은행에 다니는 맏사위가
“자네들 교사들이야 벌써 얼마 전부터 연금도 시행되고 노후 걱정은 없지 않는가. 너무 그렇게 재산증식에만 신경쓰지 않아도 되어요.”
“은행이나 기업도 지금은 다 국민연금을 붓고 있잖아요. 그런 의미에서는 누구나 마찬가지이지 요. 형님네는 작년에 큰 아파트를 마련했으니 느긋하게 말씀하시지만 저희는 언제 그런 아파트를 마련하지요?”

이때 큰 딸 아이가 나섰다.
“이제 우리나라도 재산이라는 개념과 그 집착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게 될 때가 온것 같아요. 벌 써 전세를 살면서 자동차는 꼭 있어야 하고 아파트를 장만하기 위해 허리끈을 졸라메기 보다는 보다 적극적으로 인생을 즐기려는 풍조가 늘고 있는 것만 보더라도 그렇게 성급히 재산증식에 연 연하지 않아도 될거예요. 아직 젊잖아요. 그리고 노후는 둘이서 받는 연금만 가지고도 걱정 없잖 아요. 즐겁게 살아요. 안그래요?”

여기서 내가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 이제 너희들 세대는 우리들과는 다르지 않느냐? 노후면 연금이 나오지 않나 보장된 일자리가 있지 않나, 사실 이 애비는 너희들 다섯 남매를 기르는데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래도 이렇게 건강하게 살고 있고, 들어 앉을 집이 있고 그리고 연금도 타고 있지 않느냐. 그러니 너무 그 재산이라는 것에 급 급하지 말고 우선 마음의 여유부터 찾아라!”
“사실 아버지는 참 다행이에요. 연금 첫 수혜자가 되셨으니… 그게 어딘데”

이렇게 해서 온 식구가 한바탕 웃었다. 철없는 외손주 녀석들은 저희끼리 야단이다. 저 어린 것들 이 자라서 일할 때는 이 세상이 무척 달라져 있겠지. 그리고 다시는 무슨 일을 할까? 무엇을 하면 좀 더 돈을 벌까. 퇴직을 하면 무엇을 할까에 대해 전혀 걱정없는 사회가 오겠지… 인플레도 줄고 투기도 없고 집 장만때문에 아귀다툼 같은 연출을 하지 않고도 잘 살 수 있겠지. 그후 나는 혼자서 이런 생각을 했다.

한번은 유럽 쪽을 출장을 갔을 때였다. 서양사람 늙은 부부가 서로 부축해주면서 식당에 앉아 생 선요리를 맛있게 먹으며 서로 권하는 그 모습이 그럴 수 없이 행복해 보이고 또 부러웠다. 지금부 터 20년도 더 이전인 당시의 우리나라로서는 노년의 저런 부부여행이란 생각도 못할 때였다. 출장비를 아끼느라고 빵을 사다 쨈 발라 먹던 그런 때였으니까!

현지에서 들은 말로는 저들 서양인 노부부는 연금을 조금씩 남겨 모았다가 저렇게 여행하는 것이 더없는 즐거움이라고 했다.
이제 나도 저들 서양사람 노부부를 부러워 할 필요가 없다. 지금 넣고 있는 연금 신탁이 불어나면 칠순 때 아내를 데리고 세계일주 여행을 떠나게 될터이니까.

아이들이 “아버지의 연금”이라고 웃는 비록 적은 액수이지만 그것은 이 나라 처음의 연금이고 또 모이면 그런대로 상당한 액수가 될터이니 나는 통장을 꺼내보며 건강해야겠다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