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제4회 장려상)어둠 속에서 비치는 한 줄기 빛

작성부서

홍보실

등록일

2003/08/20

조회수

2039

내용

제4회 장려상
어둠 속에서 비치는 한 줄기 빛

유 성 민 / 경기 화성군 비봉면

국민연금관리공단으로부터 작은 안내장 하나가 날아 든 것은 1995년 어느 따스한 봄날이었다. 나 는 무심히 그 안내장을 읽게 되었다. 농어촌지역에도 국민연금이 실시되었는데 의무적으로 가입해 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처음 실시하는 것이라 연금에 대한 인식도 없었고, 정부에서 강제로 가입 시킨다는 것 때문에 나는 약간의 저항감과 부정적인 시각을 가졌다. 부모님의 노후와 불확실한 미 래를 위해서는 뭔가 대책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그리 쉽게 결정할 수 없는 문제였기 때문에 망설였다.

나는 여기저기 알아보게 되었고 비교적 적은 보험료를 내고도 노후에 안정적인 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 는 것이 국민연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아버지께 가입을 권하게 되었다.

막상 가입은 하였지만 한 달에 한번 내는 적은 보험료를 보면서 과연 노후에 제대로 보장을 받을 수 있을지, 과연 그때까지 아버지가 살아 계실지 의문이 생겼지만 이왕에 가입했으니 하는 마음으로 꼬박꼬박 보험료를 내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국민연금에 가입한 지 1년이 지난 어느 날에 사고를 당하셨다. 유난히 하늘이 맑 고 푸르렀던 가을날이었다. 일을 하시다가 부주의하셔서 허리와 다리, 발목을 다치신 것이었다. 인 사불성인 채로 병원에 누워 계시는 아버지를 보고 어머니와 동생은 어찌 할 바를 몰라하며 울기 만 했다. 아버지도 그런 우리를 바라보며 우셨다. 그저 막막할 뿐이었다. 그때 학생이었던 나는 그런 아버지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가장(家長)으로서의 아버지 자리. 그 자리는 비어있음으로 해서 내게 가을 하늘만큼이나 넓고 크 게 느껴졌다. 정신적인 고통과 경제적인 어려움이 한꺼번에 우리 가족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 정도 마음의 안정은 찾을 수 있었지만 경제적인 문제는 해결할 방법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어머니는 일자리를 찾아 나섰고 나 또한 학교를 계속 다니기 위해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해야 했 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슴이 아팠던 것은 동생이 휴학하고 군 입대를 해야 하는 것이었다.

언젠가 한번은 치뤄야 할 일이었지만 차가운 바람이 사람을 더욱 그립게 만드는 계절, 짧은 머리 를 털모자로 감추고 가족을 떠나는 동생. 나는 홀가분한 마음일 수가 없었다. 아버지가 병원에 누 워 계심으로 인해 헤어짐의 아픔은 몇 갑절 더했다. 떠나는 동생도 그런 동생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울기만 하는 어머니를 보는 일도 내게는 참으로 낯설고 벅찬 아픔이었다.

그 뒤로 어머니는 다행히 일자리를 찾았고 나 또한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아버지 또 한 싱그러운 햇빛 속을 목발에 의지한 채 오랫동안 텅 빈 채로 비워 놓았던 당신의 자리로 돌아 오셨다. 비록 ‘장애2등급’의 판정을 받긴 했지만 두 발로 걸을 수 있다는 것에 우리는 감사했 다. 그러나 아버지의 자리는 채워졌지만 아버지의 노동력 상실로 인한 경제적 곤궁은 우리를 숨막히게 했다. 어머니와 나의 노력으로 메우기에는 너무 벅찼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우연히 관공서에서 나온 잡지를 뒤적거리다 정신이 번쩍 드는 기쁜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일정한 나이가 되어야만 연금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국민연금이 장애를 입 은 경우에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때의 기쁨을 어찌 표현할 수 있을까. 나는 그 자리에서 곧바로 국민연금관리공단으로 전화를 걸 었다. 문의 결과 아버지의 경우도 ‘장애연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몇 가지 갖추 어야 할 서류에 대하여도 안내를 받게 되었다. 어머니의 수입에 의지한 채 어렵게 생활해오던 터 여서 어머니와 나의 기쁨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 누구보다 아버지의 기쁨이 몇 갑절 더했을 것이다.

서류를 제출하고 한 달이 지나 아버지는 연금수혜자가 되었다. 적은 보험료를 내고도 큰 혜택을 누리게 된 것이었다. 그 뒤로 아버지는 꾸준히 물리치료를 받아서 목발 없이도 걷게 되었고 연금으로 우리 가족은 안정된 생활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서 제일 먼저 생각난 것이 군대간 동생이었다. 동생을 군대에 보낸 지 1년이 가까워오고 있 었다. 그 동안 각자의 생활이 너무 바빴고 아버지가 장거리 여행을 감당할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한 푼이 아쉬웠던 터라 동생을 면회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생활이 안정되고 마음의 여유를 되찾으면서 제일 먼저 동생을 면회 가기로 했다. 아침 일찍부터 어머니는 이것저것 음식을 장만하느라 분주했고 아버지 역시 조금이라도 건강해 보이기 위해 이발을 하시고 억지로 발목을 구부려 가며 걷는 연습을 하시느라 바빴다.

울긋불긋 단풍이 든 산을 끼고 유유히 흘러가는 북한강을 따라 경춘가도를 달려서 우리는 동생이 있는 낯선 곳에 도착했다. 면회를 신청하고 기다리는 동안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손가락을 걸면 서 약속했다. “성업이를 만나도 절대로 울지 않기에요, 마음 약해지니까요...” 검게 탄 얼굴에 군 복을 입은 동생은 보기에도 늠름해 보였다. ‘맹호’라는 우렁찬 소리와 함께 동생은 멋지고 씩씩 하게 우리를 맞이했다.

그러나 아버지를 바라보던 동생의 두 눈에는 어느새 굵은 눈물이 뚝뚝 떨 어졌다. 반가워서였을까, 아니면 다시 건강해진 아버지를 보고 기뻐서였을까? 동생은 그렇게 울었 다. 아버지가 아플 때 곁에 있어주지 못한 미안함이었고 오랜만에 가족을 만난 기쁨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그런 감정들이 한꺼번에 밀물처럼 밀려들었던 것 인지도. 그런 동생을 부둥켜안고 어머니와 아버지도 조금전의 다짐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향한 진 한 정을 느끼면서 함께 울었다.

모처럼 네 식구가 오손도손 점심을 먹으며 그 동안 쌓아두었던 이야기를 펼쳐놓고 즐거운 한 때 를 보내다 헤어질 무렵 동생이 통장을 꺼내놓았다. 군입대할 때 부모님이 준 용돈과 월급을 아껴 첫 휴가 때 부모님께 드리려고 모았다는 12만원이 든 통장이었다. 어머니는 또 목이 메이시고 아 버지는 몸과 마음이 부쩍 커버린 동생을 마음껏 대견해 하셨다. 그 곁에서 나는 흐뭇한 마음으로 동생을 안심시킬 수 있었다. 어머니의 수입과 아버지가 받는 연금으로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이 없 다는 것을 알려줄 수 있었다.

어느새 세월이 흘러 이제 그 동생이 제대하여 학교에 복학하였고 나는 학교를 졸업하여 직장인이 되었다. 나는 이제 우리 가족의 미래를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 아버지가 예전만큼 건강하지는 못 하지만 여전히 우리 곁에 계시고 아버지의 사고가 가져다주었던 잠깐동안의 시련으로 우리 가족 은 서로의 끈끈한 정을 확인하고 가족애를 다질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어렵고 힘들었던 시기에 우리 가족에게 한줄기 빛으로 다가왔던 국민연금에 대하여 새롭게 인식할 수 있었다. 언제나 받게 될까 혹시 못 받게 되지는 않을까 하고 막연한 의구심을 가졌던 국민연금이었다. 그 런데 우리는 국민연금으로부터 커다란 힘을 얻었다. 국민연금이 있었기에 우리 가족은 희망을 잃 지 않고 그 역경을 헤쳐 나올 수 있었고 지금의 안정되고 행복한 생활을 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 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흔히 인생을 두고 호사다마(好事多魔)나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한다. 당장 내일이 어떻게 될 지 알지 못하는 것이 우리네 인생살이이다.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아무런 준비가 없었던 우리 가족에게 국민연금조차 없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과연 그 어렵고 힘들었던 어둠의 터널을 무사히 헤쳐 나올 수 있었을까. 나는 지금도 그것을 자신할 수가 없다. 내가 어려울 때 이웃이나 친척 보다 더욱 가까운 곳에서 함께 했던 것이 국민연금이었다.

나는 지금 내게 주어진 소중한 일상과 국민연금에 감사한다. 그리고 국민 모두를 위한 사회보장제도로서의 국민연금, 불의의 사고나 질병, 안락한 노후를 보장하는 연금제도의 의미와 가치를 거듭 되새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