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제4회 장려상)우리가정의 든든한 버팀목 국민연금

작성부서

홍보실

등록일

2003/08/20

조회수

2120

내용

제4회 장려상
우리가정의 든든한 버팀목 국민연금

전 정 임 / 부산 연제구 연산2동

길고 지루한 여섯 시간, 디스크 수술을 받고 남편이 병실로 돌아왔다. 나는 의식이 채 돌아오지 않은 남편의 손을 껴안고 감사했다. 남편이 곧 건강한 모습으로 일어설 수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결과를 두고보자던 의사의 말을 들으면서도 나는 내게 주어질 보다 길고 힘든 시간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예감하지 못했다.

비교적 규모가 작은 건설회사에 다니던 남편이 언젠가 부터 안색이 창백해지고 자주 허리가 쑤신 다고 했었다. 침도 맞고 여러 가지 물리치료도 받아 보았지만 효과가 없었다. 그러다 이곳 저곳 수소문해서 대청동에 있는 M병원으로 갔고 허리치료를 잘한다는 K박사에게 특진을 신청하여 수 술을 받았다.

그러나 수술만 하면 거뜬해지리라 생각했던 남편은 한 달이 지나도 일어나지 못했고 대소변을 받 아내야만 했다. 진통제 없이는 하루를 견디지 못했다. 인공 디스크가 거부반응을 일으켜 염증이 생긴 것 같다는 의사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수술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했고 서서히 후회하기 작했다. “서울에 있는 큰 병원에 가야지, 무슨 소리를 하느냐” 펄쩍 뛰었던 친척과 남편에게 삼재 (三災)가 들어 수술하면 안 된다고 반대했던 큰 형님의 말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독한 약을 오래 복용한 탓에 위장이 나빠진 남편은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하루가 다르게 바 짝바짝 말라갔다. 무심코 쳐다본 거울 속의 내 모습은 흰머리가 듬성듬성하고 바짝 말라 이디오피 아 난민 같은 모습이었다. 어느새 나는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 있었다. 남편이 없는 내 삶을 한번 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탓에 심적 고통이 너무 컸던 것이다.

퇴원해서 집에 온 남편은 “나 죽는다”고 고함을 질러대며 손에 잡히는 대로 물건을 집어던졌다. 집안은 마치 지진이 지나간 자리 같았다. 어쩌면 남편의 병은 집안 전체를 뒤흔든 강도 높은 지진 이었는지도 모른다.

통증을 호소하는 남편을 두고볼 수 없어서 나는 다시 개금동에 있는 B병원 응급실로 갔다. 다음 날 아침 허리디스크 전문의 S박사를 만났다. 그는 허리뼈 속에 염증이 생겨 통증이 심하니 절대 안정을 취하라고 했다. 아울러 물리치료를 권했다. 수영장의 물 속에서 걷는 연습을 하고 전기찜 질 등의 치료를 하였으나 남편은 계속 통증을 호소했다. 물리치료의 고통을 견디지 못한 남편은 “저것이 서방을 잡으 려고 별 짓을 다한다”고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그런 남편을 쳐다보는 내 가슴은 천 갈래 만 갈 래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그나마 대학병원에서는 한 달 이상 입원할 수 없는 병원규칙 때문에 강제퇴원을 당했다. 그냥 집 으로 돌아갈 수 없어서 처음 수술한 병원으로 다시 갔다. 병원에서는 2차 수술을 권했고 남편은 통증을 견딜 수 없었던 지 다시 수술을 원했다. 수술 후 남편의 서 있는 시간이 조금 길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남편은 또다시 통증을 호소했다. 의사는 수술후유증이 생겨 그렇다고 말하며 2~3년 참고 견디어야 한다고 말했다. 정 참기 어려우면 신경차단술을 하라는 것이었다. 멀쩡한 신 경을 끊으면 앞으로 남편은 어떻게 되나? 친척들은 서울의 큰 병원으로 옮길 것을 권유했다. 그래 서 다시 퇴원을 했다.

엄마의 손길이 닿지 않은 가정 또한 말이 아니었다. 밥솥을 열어보니 퍼런 곰팡이가 슬어 있었다. 아이들은 밥도 굶고 학교를 다녔던 모양이었다. 쌀통을 열어보니 쌀 한 톨 남아있지 않고 냉장고 는 텅 비어 있었다. 쓰레기통에는 라면봉지가 몇 개 보였다.

중학교에 입학한 아들은 학비마련을 위해 신문배달을 했고, 대학에 입학한 딸 은 밤늦도록 아르바이트를 했다는 것이다. 이 죄를 어찌 할거나. 부모 잘못 만난 탓으로 밥을 굶 어야 하다니.....

살얼음판을 건너는 듯한 지루한 며칠이 지나 서울에서 연락이 왔다. 나는 남편을 데리고 아이들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서울행 비행기를 탔다. “사랑하는 나의 아들, 딸 보아라. 엄마는 너희들을 끔 찍하게 사랑한단다. 아무리 바빠도 밥은 꼭꼭 챙겨 먹고 다녀라. 조금만 참고 견디어 주기 바란 다.” 라는 편지를 남겨놓고서.

부랴부랴 달려온 병원 응급실, 시간은 밤 12시였다. 팔이 잘린 여자, 한쪽 다리가 피범벅이 된 남 자, 경찰관과 가족들로 북새통인 응급실에는 피비린내가 코를 찔렀다. 고함을 치며 통증을 호소하 는 남편에게 의사는 야속하게도 진통제 주사 한 대와 링거액을 달아 놓고는 휑하니 사라져 버렸 다.

아침 10시를 넘겨서야 허리디스크 전문의인 K박사를 만나게 되었다. 나는 그에게 큰절을 하며 제 발 남편을 살려 달라고 매달렸다. 의사의 승낙 없이는 입원할 수 없다는 병원 측의 말을 들었던 터라 가슴이 바싹바싹 탔다. 다행히 갖고 간 X-레이 사진을 통해 정상이 참작되어 곧바로 입원할 수 있었다.

열흘정도 수술에 필요한 검사를 받았다. 그러나 K박사가 일본으로 출장을 가야한다는 것이었다. 다시 눈앞이 캄캄했다. 그저 맥놓고 스무날이나 비싼 병원비를 물며 하루 약 세 첩으로 견디어야 한다니..... 무작정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일본으로 출장 간 의사를 기다릴 수 없어서 물리치료를 받 기로 했다. 남편은 “선무당이 사람 잡겠다. 수술할 사람에게 물리치료가 웬 말이냐”며 고함을 질러댔다. 나는 “며칠간 치료를 받아보고 효과가 없으면 그만둡시다”며 남편을 달래야했다.

다행히 스팀 타올과 전기치료 등 몇 가지의 물리 치료를 보름정도 하고 나니까 남편의 통증이 훨 씬 가벼워졌다. 그 동안 서울에 사는 큰딸이 소꼬리를 고아서 날랐고 포도액즙을 세 상자나 해서 남편에게 먹였다. 출장에서 돌아온 K박사가 남편을 진찰하더니 상태가 호전되어서 수술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지하에 계신 조상님들이 우리를 도와주시는 것만 같았다. 몇 년 동안이나 지긋지긋하게 붙어 다니던 통증이 사라지자 남편의 표정이 밝아졌다. 퇴원을 기다 리며 병실과 복도를 오가며 걷는 연습을 할 수 있었다.

보름 후에는 코스모스가 만발한 병원 뜨락을 거닐게도 되었다. 그리고 그날 나는 행운의 여신을 보았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남편을 데리고 물리치료실을 오르내리다가 옆 복 도에 비치된 ‘국민연금안내’라는 책자를 무심코 보게 되었던 것이다. 내용을 읽다 보니 남편도 장애연금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넉넉하지 못했던 남편의 월급에서 매달 ‘국 민연금’이란 항목으로 공제되었던 돈을 무척 아깝게 느껴졌던 기억이 났던 것이다.

퇴원을 하여 집으로 돌아온 뒤에 나는 곧바로 수영에 있는 국민연금관리공단 해운대 출장소를 찾 아갔다. 환자를 돌보면서 사무실을 몇 차례 오가며 직원과 상담하고 서류를 준비해서 제출했다. 한 달 후 국민연금공단으로부터 반가운 소식을 받았다. 남편이 ‘장애 3급’으로 판정되어 국민연 금을 받게 되었다고 했다. 그 동안 받지 못했던 연금 3백 만원과 이후 삼 개월마다 76만원씩 통장 으로 입금된다는 것이었다. 삼 년 동안 남편의 병원비로 재산을 다 날리고 아이들 학비도 제 때에 주지 못했던 처지였다. 그 동안 참고 참았던 눈물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나는 그날 남편의 흰 셔츠가 다 젖도록 울었다. 그 흔한 보험상품 하나 든 것 없어서 살 길이 막막했었는데 남편의 약값과 아이들 학비까지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생긴 것이었다.

남편은 국민연금 때문에 애비 구실 톡톡히 한다며 친구들에게 자랑을 하였다. 국민연금을 받을 수 있게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국민연금 만세’를 외치며 눈물을 글썽거렸던 고등학생이 된 아들은 커서 국가공무원이 되어서 어려운 이웃들을 돕겠다고 했다. 교육대학 졸업반이 된 딸은 자라나는 새싹들에게 국민연금의 고마움을 가르치겠다고 다짐했다. 국민연금은 단순한 몇 십 만원의 돈이 아니라 우리 가족이 가장 힘들고 어려웠을 때 우리를 지켜준 든든한 버팀목이었던 셈이다. 이제 국민연금 덕분으로 우리 가정은 긴 태풍이 지나간 뒤의 평온 같은 화목한 가정을 되찾았을 수 있 었다. 국민연금에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