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제4회 우수상)'세금꼬리'가 '생명의 끈'으로

작성부서

홍보실

등록일

2003/08/20

조회수

2052

내용

제4회 우수상
'세금꼬리'가 '생명의 끈'으로

신 정 우 / 수원시 권선구 세류 2동

불혹,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는 마흔의 고개에서 나는 새삼 주변을 돌아본다. 1남 1녀의 자녀를 둔 가장으로서의 내 평범한 자리가 소중하게 느껴지고 지나간 내 삶의 여정 또한 새롭게 다가온다. 어둠의 긴 터널을 지나온 안도감 같은, 새로운 출발을 기다리는 설레임같은 감회가 베여있다. 그러면서 나는 깨닫는다. 지금의 모든 느낌들이 불혹의 나이 때문이 아니라 어느 날 느닷없이 찾아온 혹독한 시련과 그 시련을 극복한 뒤의 여유와 느긋함이라는 것을.

나는 포항에서 북쪽으로 조금 떨어진, 예로부터 물이 맑아 '청하'였던 고장에서 위로 딸 여섯을 둔 집안의 막내아들로 태어나 부모님의 남다른 보살핌 속에서 자랐다. "없는 놈은 건강한 몸뚱아리가 재산"이라던 어머니의 철학 때문이었는지 나는 병원 한번 가지 않고 건강하게 자라났다. 군대시절 전우들은 힘든 훈련에도 지치지 않는 내게 군대가 체질이라며 "꽝꽝 말뚝을 박으라"고 놀리기도 했다.

그러한 나의 건강전선에 이상이 생긴 것은 96년 고향에서 명절을 보내고 수원 집으로 돌아온 뒤부터였다. 고향에서 싱싱한 생선회를 먹은 것밖에 없는데 설사가 멈추질 않았다. 며칠 약을 지어먹어도 차도가 없었고 자꾸 어지럽고 손발이 저려왔다. 며칠 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동네 내과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게 되었다.

이런 경우를 두고 마른 하늘의 날벼락이라 말하는 것일까. 검사결과는 '만성신부전증' 말기였다. 지금껏 한번도 의심해보지 않았던 건강이라 나는 검사결과를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다. 더구나 인공신장기(투석기)를 이용하여 일주일에 2~3회 피를 걸러 주어야만 목숨을 유지할 수 있는 중병이라니. 지금껏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아니 상상하기 싫은 병이 내 안에 들어있다는 사실에 나는 그저 말문이 막혔다. 그토록 자신만만했던 건강이었는데 이제 겨우 서른 여덟이라는 나이에 신장의 기능이 완전히 망가져 버리다니.

나는 오진이기를 바라는 한 가닥 희망으로 내과 두 곳과 대학병원으로 재 검진을 받으러 다녔다. 하지만 진단결과는 한결같이 투석을 해서 피 속에 있는 요독을 걸러주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온 나는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하루아침에 중병의 환자가 되어 평생을 지내야 한다는 참담한 현실도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당장 가족들의 생활비와 투석에 들어가는 엄청난 비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나를 포기할 수가 없었다. 나약해지려는 자신을 다잡아야 했다. 아내와 두 아이를 둔 가장으로서 여기서 무너질 수 없다는 오기도 생겼다. 다음날 나는 회사에 나가 그간의 전후사정을 말하고 일주일에 두 번 실시하는 병원 투석을 허락 받았다. 회사업무에 최대한 지장이 없도록 수요일과 토요일 오후에 투석을 받기로 했다. 10 년 동안 내 집 마련을 위해 들었던 적금을 해약해 병원비를 대신하며 나의 투병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투석과 회사생활을 병행한지 두 달이 지난 어느 날 나는 회사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나오다가 회사게시판에 걸린 '국민연금안내 공고문'을 보게 되었다. 자세히 읽어보니 국민연금에는 노령연금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장애연금이란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6개월 전부터 게시판에 붙어있었던 공고가 그날 내 눈에 처음으로 띄었던 것이다. 그 순간 국민연금은 내게 10년 넘게 월급에서 공제되어 온 '세금꼬리'가 아니라 한 줄기 빛으로 느껴졌다.

그러나 총무과에 문의를 했더니 질병으로 인한 장애연금은 질병 발생 후 2년이 지나 완치되지 않았을 경우에 장애정도를 심사하여 연금지급 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이었다.

그 뒤로 나의 투병생활은 계속되었다. 어디 하나 마음 기댈 곳 없는 막막한 시간이었다. 맵고 짠 음식은 피해야 했고, 과일도 먹지 못하고 물조차 마음대로 마실 수 없었다.

일주일에 두 번씩, 그것도 한 번에 4 시간씩 투석을 해야하는 생활도 힘들었지만 음식을 조절해야 하는 것은 더욱 고통스러웠다. 병세는 점점 깊어져서 자고 일어나면 얼굴이며 손발이 퉁퉁 부어 올랐고 소변이 나오지 않을 때도 있었다. 투병생활 2년이 돼가면서부터 나는 직장생활을 계속할 수도 없었다. 요독이 늘어나 일주일에 세 번씩 투석하면서 직장생활을 계속할 염치가 없어 사직서를 냈다. 곁에서 묵묵히 지켜보던 아내가 자신의 신장을 기증하고 타인의 신장을 받아 이식수술을 받아보자고 했다.

마음 같아서는 선뜻 그렇게 하자고 말하고 싶었지만 비싼 수술비용과 자식들 걱정 때문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혼자 끙끙 앓으면서 고민을 하던 어느 날 나는 자신의 투병생활이 2년이 지났음을 생각했고 곧바로 국민연금관리공단에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신부전증은 완치가 되지 않는 병이므로 발생초기부터 장애연금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제까지 왜 그렇게 힘들게 지내 왔느냐?는 담당자의 말에 나는 기쁨의 눈물까지 흘렸다.

나는 심사에 필요한 서류를 제출하고 심사결과를 기다렸다. 그로부터 20여일후 국민연금 관리공단으로부터 ‘1급장애연금 대상자’란 통보를 받았다. 그뿐만이 아니라 그 동안 받지 못한 부분까지 소급해서 한꺼번에 지급해준다는 것이었다. 월급을 빼 가는 ‘세금꼬리’로만 생각했던 국민연금이 내가 가장 어렵고 힘들 때 그렇게 몇 갑절의 혜택으로 되돌아와 주었다.

건강을 자신했던 내게 어느 날 느닷없이 찾아온 병마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겪게될 수많은 위험들로부터 보호해주는 국민연금. 나는 말로만 들었던 국민연금이 진정 국민의 복지를 위하고 안락한 노후와 예기치 못한 질병이나 사고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는 사회보장제도임을 절실히 체험하였다.

그후 나는 분기별로 장애연금을 받아 병원비를 걱정하지 않고 투석생활을 하게 되었고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도 덜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국민연금관리공단으로부터 받은 목돈이 있어서 이식수술을 시도해 볼 수 있었다. 아내와 의논하여 <사랑의 장기본부>에 장기교환 이식수술을 신청하였다.

혈액형과 조직이 맞아야하는 까다로운 수술이어서 이식수술을 신청하고 5~6년을 기다리는 경우가 허다했지만 나는 운이 좋게도 신청한 지 4개월만에 수술의 기회를 얻었다. 상대편 부부도 우리와 똑같이 남편이 환자였고 부인이 기증자였다. 우리는 부부 네 사람이 혈액형과 조직이 맞는 기막힌 인연을 맺으며, 1998년 4월 15일과 16일 우리 나라에서는 세 번째로 부부간 장기교환 수술을 받아 건강을 되찾게 되었다.

나는 지금 하루하루를 새롭고 건강하게 보내며 매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 자신의 소중한 신장을 망설임 없이 내게 준 아내에게 감사하고, 병원비를 마련할 수 있게 해준 국민연금에 감사한다. 앞으로 국민연금은 언제나 우리 곁에서 수호천사처럼, 내용도 모르고 부었던 적은 돈이 수술비용이 되어 나의 건강을 되찾게 해준 은인이 되었던 것처럼 우리를 지켜줄 것이다.

나는 1998년 1월 회사를 그만 두면서 국민연금을 계속 납입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지만 앞으로 다시 직장생활을 하게될 것이고 국민연금을 계속 불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 나는 더욱 실감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매달 월급에서 공제되는 국민연금 보험료가 “세금꼬리”가 아닌 내 건강을 되찾게 해준 소중한 “생명의 끈”이었음을.